해외여행의 동기와 국내여행 재도약 방안: 한국인의 여행 심리를 중심으로
홍석원, 야놀자리서치 수석 연구원 / [email protected]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 미국 퍼듀대학교 교수 / [email protected]
최규완,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H&T애널리틱스센터장 / [email protected]
한국인에게 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삶의 일부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여행 소비의 무게 중심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급격히 이동하는 구조적 전환이 뚜렷하게 관측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며, 2024년 해외여행객은 2,868만 명을 기록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나아가 2025년 상반기에만 1,456만 명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 해외여행객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은 약 100억 달러(약 14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관광수지 적자라는 경제적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지출한 총액이 약 40조 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 거대한 소비의 일부만 국내로 유치했더라도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202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637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의 93.5% 수준까지 회복했으나, 내국인의 폭발적인 해외여행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관광의 회복 속도 불균형은 관광수지 적자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구조적 전환의 배경에는 저비용항공사(LCC)의 공격적인 해외 노선 확장과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의 보편화가 해외여행의 물리적, 심리적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 현실이 존재한다. 특히 ‘같은 비용이면 더 새롭고 이색적인 해외 경험을 하겠다’는 소비자 인식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며 해외여행으로의 쏠림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국민 절반 이상이 매년 해외여행을 경험하는, 명실상부한 ‘해외여행 강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대비 출국자 비중은 미국을 넘어섰으며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순수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 열기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관광 산업의 위기를 넘어, 국가 경제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를 제기한다. 즉,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해외여행 수요를 어떻게 국내로 전환하고 막대한 외화 유출을 내수 소비로 유도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본 인사이트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동기와 국내여행에 대한 인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최근 해외여행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서베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심리적, 경험적 요인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이를 통해 국내여행이 직면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조명한다. 궁극적으로 본 보고서는 국내여행을 해외여행의 대체재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제1의 선택지(Top-of-mind)’로 격상시키기 위한 전략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침체된 국내 관광산업과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데이터로 본 수요의 대이동: 왜 한국인은 해외로 향하는가
한국인의 여행 수요가 해외로 이동하는 현상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대와 가치관의 변화가 맞물린 거대한 구조적 흐름으로 분석된다. 데이터를 통해 이 수요 이동의 규모와 특징을 분석하는 것은 국내 관광이 직면한 도전의 본질을 파악하는 첫걸음이다. 이어지는 분석 결과는 여행 선호도에 나타난 명확한 세대 간 단절과,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국내여행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세대적 단절: 젊은 세대의 해외 지향성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여행지 선호도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세대별 격차다. 2025년 7월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기준 국내여행 선호도(39.0%)와 해외여행 선호도(38.4%)는 거의 유사해 표면적으로는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데이터를 연령대별로 세분화하는 순간, 국내 관광 시장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경고 신호가 포착된다.
20대 이하 응답자 그룹에서는 해외여행 선호도가 48.3%로, 국내여행 선호도(28.6%)를 1.7배 가까이 압도했으며, 30대 역시 해외여행(45.9%)이 국내여행(33.8%)을 크게 앞질렀다. 반면, 50대(국내 42.7% vs. 해외 34.9%)와 60대 이상에서는 국내여행 선호도가 우세했다. 이 데이터는 현재 국내 관광 시장이 장년층 및 고령층의 선호도에 기대어 현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래 시장의 주역인 젊은 세대는 이미 심리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이는 현재의 수요 유출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위험 요인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림1] 세대별 국내외 여행 선호도 및 상위 선택 이유

자료: 한국경제인협회,‘대국민 국내·해외여행 선호도 조사’ (2025. 7.), 야놀자리서치 재구성
이러한 세대적 단절은 단순한 선호의 차이를 넘어, 국내 관광 산업이 미래 핵심 고객층 확보에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명백한 증거이다. 젊은 세대의 여행 패턴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에 국내여행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각인되지 못한다면, 이들이 향후 중장년층이 되어도 국내여행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현재의 젊은 세대가 해외여행에 익숙해지고 학습되어 가는 것은 앞으로 그들을 국내여행으로 전환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현재의 시장 구조는 장기적인 고객 생애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를 고스란히 해외 시장에 헌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은 단기적인 매출 증대를 넘어, 산업의 장기적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위해 야놀자리서치는 추가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동기와 국내여행의 대체 가능성을 분석하였다. 특히 소비자가 국내여행에 해외여행과 유사한 가치를 부여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출할 의향이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질적인 전략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표1] 설문조사 설계 내용

세대적 단절: 젊은 세대의 해외 지향성가치 인식의 격차: 열린 마음과 닫힌 지갑
해외여행 경험자를 대상으로 ‘향후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선택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긍정적 의향(7점 척도 기준 5점 이상)을 보였다. 특히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긍정 응답 비율이 높게 나타난 점은, 국내여행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낮으며 잠재적 수요 전환의 가능성이 충분함을 시사한다.
[그림2] ‘향후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선택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응답 분포(단위: %)

그러나 문제는 지불 의향을 묻는 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응답자 대다수는 해외여행에서 지출했던 비용의 30~50% 수준만을 국내여행에 지출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해외여행과 동일한 비용을 지출하겠다는 응답은 18%에 그쳤으며,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응답은 단 1%에 불과했다.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실제 지출 데이터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1회 평균 여행 지출액은 해외여행이 약 198만 2천 원인 반면, 국내여행은 약 54만 3천 원으로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이 데이터는 국내여행이 직면한 핵심 문제가 ‘가격’ 자체가 아니라 ‘가격 대비 가치’에 대한 깊은 불신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국내여행에 대해 심리적으로는 문을 열어두고 있지만, 지갑을 열 때는 해외여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치를 책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국내여행이 제공하는 경험이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에 상응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시장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내 관광 산업이 풀어야 할 숙제는 단순히 가격을 인하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만큼의 독보적인 경험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고, 그 가치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림3] 해외여행 대비 국내여행 지불 의향 분포(단위: %)

해외 vs. 국내 선택의 심리학: ‘경험 가치’와 ‘지불 의향’의 불균형
한 데이터가 보여주는 수요 이동과 가치 인식의 격차는 소비자의 심리적 동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인들이 국내 대신 해외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비용 비교를 넘어,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근본적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경험적 투자’로, 국내여행은 ‘기능적 소비’로 인식되는 심리적 프레임의 차이가 지불 의향의 불균형을 만들어내는 핵심 원인이다.
해외여행의 경험적 가치 추구: 여행의 본질로서의 ‘새로움’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경험적 가치’에 대한 갈망이다. 설문조사 결과,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로 ‘새롭고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서’(39.1%)와 ‘볼거리와 관광명소가 다양해서’(28.1%)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경제적 요인이나 편의성보다 경험의 질과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소비자 심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세부적으로, 7점 척도로 측정한 해외여행 선택 요인에서 ‘일상탈출의 느낌이 더 강해서’(5.5점),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이 더 흥미로워서’(5.4점), ‘관광지가 더 다양하고 이국적이어서’(5.2점) 등 경험과 관련된 항목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해외여행이 더 가성비가 좋아서’(4.8점)와 같은 경제적 요인이나 ‘SNS에 공유할 만한 경험을 위해서’(4.8점)와 같은 외부 자극 요인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들이 해외여행을 단순한 휴식이 아닌,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지적·감성적 자극을 얻는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행을 통해 얻는 독특한 기억과 이야기는 장기적인 만족감을 주는 무형의 자산이 되며,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림4] 해외여행 선택 요인

국내여행의 기능적 편의성 추구: 대체재로서의 ‘익숙함’
반면, 국내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주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여행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적어서’(32.8%), ‘이동이 간편해서’(30.1%), ‘언어와 문화 차이가 없어서’(9.4%) 등이 꼽힌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기능적 가치에 해당한다.
이러한 심리적 프레임은 국내여행을 ‘열망의 대상’이 아닌 ‘현실적 대안’으로 위치시킨다. 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할 때 선택하는 차선책, 혹은 실패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선택지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여행이 기능적 소비의 범주에 머무르는 한, 소비자들은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경험적 가치를 기대하지 않는 소비 활동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려는 동기는 자연스럽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은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경쟁의 장에 놓여 있다. 해외여행이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투자’라면, 국내여행은 ‘편리함을 구매하는 소비’다. 이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지불 의향의 격차는 좁혀지기 어렵다. 국내 관광의 핵심 과제는 마케팅 구호를 통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자체를 재설계하여 국내여행을 기능적 소비의 영역에서 경험적 투자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여행: SNS와 인증 문화의 영향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해외여행 선호를 강화하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소셜 미디어(SNS) 문화다. 이들에게 여행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띤다. 낯선 문화, 이국적인 풍경, 독특한 음식 등은 SNS 피드를 채울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며, 이를 ‘인증’하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여행 경험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외여행은 국내여행보다 훨씬 더 높은 ‘사회적 자본’을 제공한다. ‘늘 가던 곳’, ‘익숙한 풍경’이라는 인식이 강한 국내여행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희소성과 차별성이 떨어져 SNS 상에서 큰 주목을 받기 어렵다. 반면, 해외여행은 그 자체로 새로움과 비일상성을 담보하기에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같은 비용이면 더 새로운 곳으로’라는 심리는 단순히 경험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경험을 과시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도 연결된다. 이처럼 여행이 사회적 경험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국내여행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매력도를 높이지 못하면 젊은 세대의 발길을 되돌리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내여행 불신의 근원: 가격, 콘텐츠, 그리고 구조적 한계
소비자들이 국내여행에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적 배경에는 국내 관광 상품과 시장 구조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돈 쓰기 아깝다’는 인식은 막연한 편견이 아니라, 가격, 콘텐츠, 선택의 폭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부정적 결과가 누적된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서로 맞물려 국내여행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가격-품질의 불일치와 신뢰의 붕괴
국내여행에 대한 불만족의 가장 큰 원인은 ‘가격 대비 만족감 저하’ 문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45.1%가 ‘관광지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을 국내여행의 가장 큰 불만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단순히 절대적인 가격이 높다는 의미를 넘어, 지불한 비용에 상응하는 품질과 경험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가치 불일치’의 문제다. 특히 숙박시설 가격에 대한 불만은 69%에 달하며, 식음료 가격에 대한 불만도 41%로 높게 나타나, 여행의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불신이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5] 국내여행에 대한 불만사항(단위: %, 중복응답)

국내 주요 관광지의 숙박비와 음식값은 해외 유명 관광지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시설의 노후화, 획일적인 서비스, 성수기 바가지요금 등의 문제가 반복되면서 소비자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 관행처럼 여겨지는 ‘바가지요금’은 개별 사업자의 문제를 넘어 국내 관광 생태계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경험은 ‘국내여행은 손해 보는 소비’라는 인식을 고착시키고, 다음 여행 계획 시 해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콘텐츠의 결핍과 경험상품의 획일화
두 번째 핵심 문제는 ‘특색 있는 관광 콘텐츠의 부족’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28.2%가 이를 국내여행의 주요 불만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는 국내여행의 활동이 대부분 식사, 자연경관 감상, 카페 방문 등 소수의 패턴으로 제한되어,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담은 깊이 있는 체험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에서 국내여행이 해외여행보다 우위를 보인 항목은 교통 접근성, 관광 편의시설, 음식 등 3가지에 불과했다. 반면, 자연경관, 역사·문화자원, 축제·이벤트, 체험 프로그램, 쇼핑 등 경험의 질을 좌우하는 8개 항목에서는 모두 해외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국내에 우수한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가공하고 차별화된 ‘경험’으로 설계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전국의 많은 관광지가 서로 유사한 상업 시설과 프로그램을 복제하면서, 여행객들은 어디를 가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이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의 본질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관광 집중화의 악순환과 선택의 제약
세 번째 문제는 ‘관광 수요의 특정 지역 집중’이다. 국내여행을 계획할 때 고려되는 목적지는 서울, 부산, 강원, 제주 등 소수의 지역에 편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새로운 목적지를 탐험하고 싶어도 정보 부족, 교통 불편, 즐길 거리의 부재 등으로 인해 결국 익숙하고 검증된 곳을 다시 찾게 된다.
이러한 관광 집중화는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첫째, 인기 지역에 수요가 몰리면서 혼잡도가 높아지고 이는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 둘째, 과도한 수요는 해당 지역의 물가 상승을 부추겨 가격-품질 불일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최근 몇 년간 제주도에 대한 여행 만족도와 관심도가 급격히 하락한 사례는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준다. 셋째, 비인기 지역은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프라 투자와 콘텐츠 개발의 동력을 상실하고, 이는 지역 간 관광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소비자는 ‘비싸고 붐비는 곳’과 ‘갈 곳 없는 곳’ 사이에서 제한된 선택을 강요받게 되며, 이는 국내여행 전반에 대한 매력도 저하로 직결된다.
이 세 가지 문제, 즉 가격 신뢰의 문제, 콘텐츠 매력의 문제, 선택지 구조의 문제는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콘텐츠의 부재가 특정 지역으로의 집중을 낳고, 그 집중이 가격 거품과 만족도 저하를 유발하며, 이는 다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동시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경험 가치 재설계: 국내여행을 ‘열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가치증대 전략
국내여행이 직면한 불신과 가치 저평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격을 통제하거나 인프라를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여행 상품의 본질, 즉 ‘경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국내여행을 해외여행의 열등한 대체재나 보완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매력을 지닌 ‘열망의 대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관광지 및 상품 가치증대 전략 방향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이는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서 벗어나, 지역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가치 창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림6] 국내여행 경험 가치 재설계를 위한 3대 전략

전략 1: 로컬 스토리텔링 강화 -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첫 번째 전략은 각 지역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와 문화, 즉 ‘로컬리티(Locality)’를 발굴하고 이를 몰입감 있는 콘텐츠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 결핍’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익숙하게 느껴졌던 장소도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서사, 인물들의 삶, 문화적 맥락이 결합될 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성공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경북 안동의 ‘진맥소주’ 사례는 밀로 만든 소주의 역사성을 재현하였다. 진맥소주의 밀밭과 양조장이 있는 맹개마을은 지역 고유성과 관광의 경험가치를 극대화하는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전북 고창의 ‘모양성 스토리투어’는 단순한 성곽 답사를 넘어, 축성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를 극으로 재현하며 방문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부산 영도의 ‘깡깡이예술마을’은 근대 조선 산업의 쇠락한 유산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공공미술과 결합해 독특한 감성을 지닌 문화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대전이 ‘성심당’을 중심으로 ‘빵지순례’의 도시가 된 것 역시, 밀가루 집산지였던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동네 빵집들의 이야기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 서사다.
이러한 접근은 대규모 자본 투자 없이도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여행객에게는 깊이 있는 지적·감성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나아가 지역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는 공간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어 지속가능한 관광의 토대를 마련한다. 핵심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매력적으로 엮어내는 ‘편집자적 관점’에 있다.
전략 2: 프리미엄 테마여행 개발 -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경험의 창출
두 번째 전략은 ‘가격-품질 불일치’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만큼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테마여행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해외여행 못지않은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국내여행은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한다.
코레일관광개발의 레일크루즈 ‘해랑’은 국내 최고급 호텔 수준의 객실과 서비스를 열차에 구현하여 전국을 여행하는 상품으로,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와 같이 미식, 예술, 역사, 건축, 웰니스, 액티비티 등 특정 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맞춤형 소규모 여행 상품은 높은 지불의향을 가진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다.
특히 MZ세대의 취향을 겨냥한 ‘K-팝 공연’, ‘K-콘텐츠 촬영지 성지순례’, ‘인생샷 전문 투어’, ‘로컬 미슐랭 다이닝 투어’ 등 독창적인 테마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이러한 프리미엄 상품은 단순히 비싼 여행이 아니라,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희소성 있는 경험이 결합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여행의 가치 스펙트럼을 넓히고, 고부가가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전략 3: 잊힌 공간의 재발견과 재생 - 새로운 앵커 목적지의 창조
세 번째 전략은 ‘관광 집중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재력 있는 유휴 공간을 새로운 관광 거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전국에 산재한 폐산업시설, 폐교, 구도심의 낡은 건물 등은 방치된 자산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통영의 동피랑마을은 낙후된 달동네를 벽화로 채워 전국적인 명소로 만들었고, 전남 곡성의 기차마을은 폐선된 철로를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공간 재생 프로젝트는 여행객에게는 신선하고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에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는 기존의 유명 관광지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키고, 국내여행의 선택지를 다변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지방정부는 관내 유휴 공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자와 지역 공동체가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잊힌 공간의 재발견은 단순히 새로운 관광지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자연 경관을 보존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 민관 협력을 통한 실행 방안
앞서 언급한 경험 가치 재설계 전략이 국내 관광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의 창의성과 공공의 지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실행 체계가 필수적이다. 콘텐츠 개발부터 인프라 구축, 제도 개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민관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할 때, 새로운 경험중심 국내 여행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선수’가 아니라, 민간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고 공정한 규칙을 운영하는 적극적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지역관광 거버넌스 구축
지속가능한 지역관광 생태계 구축의 선결 과제는 중앙정부의 거시적 정책 프레임워크 안에서, 지역 스스로가 고유의 매력을 발굴하고 이를 관광 상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내생적 발전 역량(endogenous development capacity)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기제로서, 지방자치단체, 유관 기관, 지역 주민 및 업계가 참여하는 지역관광추진조직(DMO)의 기능적 전문성과 실질적 실행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DMO는 지역 관광의 전략적 구심점으로서, 민간 부문의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을 인큐베이팅하고, 공동 마케팅 및 총체적 품질 관리(TQM)를 주도하는 거버넌스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사업은 주민 주도형 관광 비즈니스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민관협력의 모범 사례이며, 이러한 상향식(bottom-up) 접근 모델의 전국적 확산이 요구된다.
최근 정부는 수도권에 편중된 관광 수요를 다변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복수의 지자체를 연계하는 2~3개의 초광역 관광권(mega-tourism region) 조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 권역 설정은 개별 DMO의 파편화된 접근을 지양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함이나, 다수 지자체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실행 단계에서 동력을 상실할 리스크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 정책의 실행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본적 프레임워크로서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 전략의 도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핵심 거점(Hub) 에 자원과 교통망을 집중시킨 뒤, 이를 다수의 주변 거점(Spoke)들과 방사형으로 연결해 네트워크 전체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를 초광역관광권에 적용하면, '허브'는 접근성과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관문 도시(Gateway City)로, '스포크'는 허브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고유 테마(예: 자연, 역사, 미식)를 지닌 특화 관광지로 기능하게 된다. 이 전략은 '허브'가 권역 전체의 대외 마케팅과 교통 연계를 총괄하고, '스포크'는 고유 콘텐츠의 품질 관리에 집중하도록 역할을 명확히 분담시킴으로써, 복잡한 광역 거버넌스를 단순화하고 실행력을 제고한다. 일본의 '세토우치 광역 DMO' 역시 7개 현(県)이 연합하여 단일화된 브랜딩과 교통 연계(허브)를 실행하고 행정 경계를 초월한 상품(스포크)을 공동 개발하여 성공한 벤치마킹 사례이다.
종합하면, 국내 관광시장의 질적 고도화와 양적 성장을 동시에 견인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이 시너지를 창출하는 다층적(multi-layered) 지역관광 거버넌스의 확립이 필요하다. 특히, 이 거버넌스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허브 앤 스포크 모델과 같은 명확한 운영 프레임워크 하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연계되어야 한다.
교통·인프라 투자 협력: 물리적 접근성 제고와 규제 혁신
매력적인 관광 콘텐츠의 시장 가치는 물리적 접근성(Physical Accessibility)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공공 부문은 KTX역, 공항 등 핵심 교통 결절점(Node)과 잠재력 있는 관광 목적지를 연결하는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Last-mile Mobility)' 확충에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한다. 특히 교통 소외 지역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모빌리티 플랫폼과의 민관협력을 통해 수요응답형 교통이나 관광지 순환 셔틀과 같은 탄력적 교통 시스템(Flexible Transport System)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광객의 이동 마찰 비용(Travel Friction Cost)을 최소화하는 것은 관광 경험의 총체적 가치를 제고하는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이와 더불어, 공유숙박과 같은 공유경제 모델을 제도적으로 수용하여 숙박업 관련 규제를 합리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는 여행객에게 다변화된 선택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 유휴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통해 지역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핵심 과제이다.
콘텐츠 산업 및 글로벌 마케팅 연계: K-콘텐츠 IP 기반의 전략적 접근
K-콘텐츠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한국 관광산업에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핵심 전략자산(Strategic Asset)이다. 드라마, 영화 등 영상 콘텐츠의 촬영지를 단순 방문지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서사(Narrative) 기반의 체험형 관광 상품으로 심화 개발하고, 이를OTA(Online Travel Agency)와 연계하여 전방위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광 관련 공공 데이터의 개방을 확대하여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수 있는 '관광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나아가 민간 기업이 보유한 고객 데이터를 결합한 데이터 기반의 정밀 타겟팅(Data-driven Precision Targeting) 마케팅 체계를 구축하여 잠재 수요를 실질적 방문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전국 빵지순례 통합 패스'와 같은 테마 중심의 광역 연계 상품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관광객의 체류 기간과 소비 지출을 증대시키는 효과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반면, K-팝의 글로벌 수요에 부응하는 전문 아레나와 같은 핵심 인프라의 부재는 산업 성장의 심각한 제약 요인이므로,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확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제도 개선과 신뢰 회복을 위한 인센티브: 신뢰 자본 구축과 환류 시스템
융복합 관광 신산업의 등장은 현행 법규의 유연한 확장을 요구한다. '관광체험업'과 같은 새로운 업태를 관광진흥법 체계 내로 포섭하여 제도적 안정성을 부여하고, 이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지역 유휴 공간을 활용한 관광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유망 관광벤처기업에 대한 정책 자금 지원, 지역 축제의 민간 투자 유치를 위한 매칭 펀드 조성 등 다각적인 정책 인센티브를 설계하여 민간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의 근간은 바로 '시장 신뢰의 재구축'이다. 고질적인 가격 불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시 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우수 업소에 ‘공정가격 인증’을 부여하는 등 가격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통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 개선과 인센티브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계획-실행-성과 평가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성과관리 및 환류 시스템 (Performance Management and Feedback System)을 확립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언: 다시, 한국을 여행할 이유 - 해답은 ‘경험 가치’에
한국인의 여행 수요는 줄지 않았다. 다만 그 방향이 해외로 옮겨갔을 뿐이다. 따라서 국내 관광이 풀어야 할 숙제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수요의 목적지를 다시 국내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해외 대신 국내로 가자”는 당위적 호소나 애국심에 기댄 마케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해법의 본질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해외여행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국내여행이 매력적이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
본 인사이트가 분석한 바와 같이, 현재 국내여행은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경험적 투자’가 아닌 ‘기능적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가격 대비 낮은 가치, 획일화된 콘텐츠, 제한된 선택지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이다. 따라서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해외로 향하는 발길을 돌릴 수 없다. 목표는 국내여행을 해외여행의 ‘대체재나 보완재’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제1의 선택지’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과 다채로운 자연환경, 독보적인 K-콘텐츠, 그리고 뛰어난 안전성과 편의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창의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의 고유한 서사를 입히고, 차별화된 프리미엄 경험을 설계하며, 잠자고 있던 공간을 재생하여 새로운 목적지를 창조하는 노력이 결합된다면, 국내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미래의 국내 관광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여행객들은 단지 가깝다는 이유로 강원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장인이 운영하는 특별한 막걸리 양조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을 목적지로 설정한다. 충청도의 쇠락한 산업 도시는 그 자체의 역사성을 예술 갤러리와 공연장으로 재탄생시켜, 주말을 보내고 싶은 가장 ‘힙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다.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히 ‘비싼 숙박’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한국적 미학과 시공간의 역사성을 체험하는 독점적 경험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이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수려한 자연경관 역시 우리만의 고유한 경험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사랑받는다.
‘다시, 한국을 여행할 이유’는 결국 우리가 우리 안에 내재된 유·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고 재창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전략적 비전의 성공적인 실행은 단순히 관광수지 적자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우리 문화 자산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국가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여행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더 멀리’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여행이 가능하다’고 소비자가 느끼는 순간, ‘이만하면 괜찮다’는 체념이 ‘이곳이어야만 한다’는 열망으로 바뀌는 바로 그 지점에서, 국내 관광은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본 내용 인용시 "홍석원, 장수청, 최규완(2025), 해외여행의 동기와 국내여행 재도약 방안: 한국인의 여행 심리를 중심으로, Yanolja Research Insights, Vol.32."로 표기.